“오늘도 일찍 일어났네. 잘 잤니, 란?”
“……응.”
‘그거야 유키무라 네놈이 매일 아침마다 전화를 하니 그럴 수밖에!’
차마 소리가 되지 못하는 말을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으며 입으로는 착실하게 대답을 했다.
“아침은 먹었고?”
“응, 먹었어.”
“그래, 그렇구나…….”
“……오, 빠는?”
‘낚이면 지는 거다!’라는 생각이 들지만 아쉬움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에 약해진 나는 어지간히 익숙해지지 않는 호칭으로 유키무라를 불렀다.
“물론 먹었지. 오늘 아침은 우리 란이 좋아하―”
“어, 오빠 아침 연습 시작할 시간 아니야?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이따 연락할게.”
“응, 그럼 전화 기다릴게.”
난 연락한다고 했지 그게 전화라고 말하지는 않았는데 유키무라가 전화로 단정 지어 버렸다. 길어지려는 통화를 빨리 끝낼 수는 있었지만 나중에 전화해야 할 생각을 하니 암담하기도 하다.
“휴우.”
내가 설정했던 글 속으로 들어와 버린 지 벌써 반년. 타이밍 좋게 떨어진데다 현실 감각이 없는 와중에도 중요한 대사를 제대로 이야기 한 덕분에 유키무라의 시스터 콤플렉스 수치가 하루하루 높아지는 중이다. 응, 그래. 그러니까 바로 이 시스터 콤플렉스가 문제인 거다. 물론 이런 유키무라가 보고 싶어서 이야기를 스케치 했던 건 사실이지만 내가 유키무라를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나 보다.
그날을 기점으로 당장 릿카이로 전학 오라는 부탁을 빙자한 협박과 애원이 골고루 섞인 권유는 매일 듣는 안부인사요, 시험기간에 무리하다 쓰러지면 안 되니 공부는 못해도 된다는 불필요한 친절과, 위험하니 수학여행 같은 건 절대 보낼 수 없다며 심지어 어머니와 싸우기까지. 이쯤 되면 ‘시스터 콤플렉스’라는 귀여운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화룡점정은,
“란, 혹시라도 효테이에서 테니스부 근처에도 가면 안 돼.”
“응? 응.”
단호함이 깃든 말에 살짝 고개를 갸웃했지만 평소와 다르게 엄한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하는 유키무라의 박력에 밀려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운동은 하는 것도 보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데다, 자의로 그런 소음의 근원지에 갈 일은 절대 없으니까. 하지만 이어지는 유키무라의 말은 나를 경악케 했다.
“릿카이랑 달라서 효테이 테니스부는 실력이 별로거든. 괜히 공이 잘못 튀기라도 해서 란이 다치면 안 되니까. 알았지?”
‘헐. 이님이 지금 뭐래요.’
나는 유키무라의 황당한 말에 뭐라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만 뻥긋 거렸다. 그러나 내 어이없어 하는 표정은 중요하지 않은지 유키무라는 계속 내 대답을 종용하며 더욱 더 진지해지고 있었다.
“혹 지나가다 테니스부가 보이면 멀리 피하고, 같은 반에 테니스부 부원이 있으면 쳐다보지도 말고. 아니, 효테이는 남학생이 더 많지. 오빠 말고 다른 남자들은 다 늑대니까 남자애들이랑은 아예 이야기도 하지 않는 게 좋겠다.”
“유, 아니 오빠!”
“응?”
“응, 응! 오빠 말대로 할게!”
내가 이 나이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설교(!)를 듣고 있어야 하나 싶어 후딱, 유키무라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었다. 그제야 유키무라의 표정이 풀어지며 평소의 미소 짓는 얼굴로 돌아왔다.
“착하다, 내 동생. 오빠 말도 잘 듣고.”
그리고 이어지는 칭찬과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 한결 마음이 여유로워진 유키무라와 다르게 내 속은 오히려 복잡해 졌다. 그래, 포기하면 편하……긴 무슨! 억울해! 오늘도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하는 절규가 마음속에 한가득 메아리쳤다. 아흑, 내 신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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