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어나.”

누군가 계속 을 부르며 깨우는 소리가 들리는데 이상하게 내 몸이 흔들렸다. 모처럼 여유가 생겨서 책을 한 권 꺼내들었는데 아무래도 책을 읽다 잠이 들었었나 보다. 접착제를 바른 것처럼 달라붙는 눈을 애써 뜨며 멍한 정신을 깨우기 위해 고개를 두어 번 흔들었다. 하지만 눈앞의 이해할 수 없는 환영이 사라지질 않는다. 뭘까, 이건.

무리해서 오지 않아도 괜찮아.”

……?”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

한숨을 내쉬며 환영이 내뱉는 말에 얼결에 대답해 버렸다.

우리가 그렇게 사이좋은 남매는 아니었잖아?”

, 이건기억을 더듬으며 나도 모르게 끄덕인 고개에 상대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란, 네 태도가 이상하다는 거야.”

쓰려고, 아니 쓰고 싶어서 스케치만 슥슥 그린 뒤 블로그에 올려두었던, 그 중에서도 유키무라가 시스터 콤플렉스를 가지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는 바로 그 부분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이어지는 대답은 이거다.

오빠니까.”

…….”

내가 오빠의 동생이니까.”

그래, 그러니까 지금 내 앞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병원의 투박한 환자복을 입고도 청초한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저 미인은 분명 유키무라 세이이치다. 그런데 저 인물이 왜 내 눈앞에 있는 거지?

 

 

내일은 레귤러들이 오기로 했으니까 다음 주에 봐. 남은 주말 잘 보내고. 어머니께 전화 드리는 거 잊지 말고 조심해서 들어가.”

자신이 언제 당황했냐는 듯 평소의 온화한 표정으로 돌아온 유키무라였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마도 평소의 유키무라였다면 하지 않았을 말을 연이으며 나를 병실 밖으로 내밀었다. ,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드는 생각은 나 쫓겨났구나……!’라는 것.

, 뭐야. 내가 생각했던 거기는 하지만 귀엽잖아?”

그렇지만 귀여운 건 귀여운 거고 당장 내 상황을 점검하는 게 먼저다. 유키무라의 병실에서 멀어지며 가방을 뒤적거려 지금 상황에 도움을 줄 휴대폰과 다이어리를 찾아냈다.

다이어리에는 [유키무라 란 幸村 藍]이라는 이름과 함께 학교, , 생일, 연락처 등의 간단한 신상 정보가 적혀있었다. 더불어 월별 스케줄에 자주 표시되어 있는 오빠라는 두 글자. 거참, 나답구나. 분명 오빠라고 적혀있는 날들이 내가 유키무라를 찾은 날이리라. , 그런데 중요한 건 이게 아니고……. 월별 스케줄을 넘겨 메모란을 찾아보니 효테이와 병원을 오가는 방법과 시간이 세세히 적혀 있었다. 그리고 다이어리를 몇 장 더 넘기자 보이는 기숙사 정보. 살았다!

집에 가는 방법은커녕 학교에 가는 방법도 모르는 나에게 이 다이어리는 그야말로 구세주였다. 지금 내가 입고 있는 건 효테이 교복이 분명한데 교복을 입고서 자신이 다니는 학교를 찾아가지 못한다면 그게 어인 망신이란 말인가. 그래도 교복을 입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지금 상황을 파악하는데 하나의 증거가 되어 주었으니까.

기숙사 통금시간과 현재 시간을 확인하며 바삐 움직일 때 손에 든 휴대폰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휴대폰 액정에 보이는 이름은 [유키무라 ○○○ 幸村 ○○○] 그러니까……, 아마도 어머니?

……여보세요?”

, 아직 세이 쨩과 함께 있니?”

, 아니요. 방금 나왔어요!”

시간이 늦었는데 아무런 연락이 없어 걱정이 되셨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아까 유키무라가 어머니께 전화 드리라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대충 얼버무리며 지금 기숙사에 돌아가는 중이라며 안심시켜 드리자 다음 주말에는 꼭 집에 오라는 당부가 이어진다. 역시나 대답을 어물쩍 넘기며 무사히 통화를 끝내고 계속 다이어리를 확인하며 효테이 중학교 기숙사로 돌아가기 위한 걸음을 서둘렀다.

 

 

 

Posted by De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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