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후지 슈스케

테니 2014. 8. 17. 23:06

<전력 드림 60* 너의 빨강구두>

817() 22(10)부터 23(11) 까지 60분간 진행됩니다. 마감 후 탐라도배가 예상되오니 불편하시면 RT끄기를 해주세요!

* 두번째 주제 : 흔적

#hello_dream

 

 

흔적, 후지 슈스케 @kaihuayul

 

, 눈가에 느껴진 차가운 기운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아침부터 꾸물꾸물했던 하늘에서 하나, 둘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비가 오기 전에 도착해서 다행이네.”

어깨에 메고 있는 카메라 가방을 고쳐들며 후지가 발걸음을 서둘렀다. 계획했던 일정이 틀어져 예매한 기차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역에 도착했는데, 후지가 역사에 들어서자마자 무섭게 내리는 비를 보니 어긋난 일정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혹시 네가 이곳에 있는 걸까. 역 입구에서 쏟아지는 비를 보며 생각에 잠겼던 후지는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아메온나雨女, 그녀의 별명이었다. 맑은 날이 내내 이어지다가도 그녀가 어딘가 멀리 가야하는 날이면 꼭 비가 오고는 했다고 이야기하며 웃던 모습이 방금 유리에 맺힌 빗방울처럼 선명했다. 초등학교 때는 소풍가는 날 한 번을 빼놓지 않고 비가 왔다고 했다.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어디 여행이라도 갈라치면, 바로 전날까지 조마조마하며 확인한 일기예보가 출발 당일에 갑자기 비 소식으로 바뀌어있어 실망한 것도 수차례라 했다. 간절한 마음으로 테루테루보즈坊主를 만들어 창가에 걸어두지만 효과가 있었던 적이 없다며, 혹 자신이 아메온나여서 테루테루보즈를 거꾸로 걸어야 하는 걸까 싶어 시도해보았지만 결과는 역시나 달라지지 않더라고 했다.

, 이제는 괜찮아. 너랑 있으니까. 하레오토코지 상.’

그렇게 말하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 맑은 웃음 어디에도 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어서 후지는 그녀가 아메온나라고 말하는 걸 한귀로 흘려들었다.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출사를 다닐 때 날씨는 꽤 중요한 요소였다. 날씨에 따라 사진이 다르게 나오기도 하고 차가운 비를 맞는 게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카메라는 빗속에서 다룰 수 있는 장비가 아니었다. 그리고 후지는 언제나 날씨 운이 좋은 편이었다. 돌아다니다 보면 비를 만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혹 비가 내리더라도 지금처럼 그가 어딘가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비가 쏟아지고는 했던 것이다.

 

첫 데이트는 놀이동산이었다. 기실 둘 다 놀이기구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연인이 되었으니까, 평범한 연인들이 하는 것들을 해보고 싶다며 눈을 반짝이는 그녀의 표정에 후지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카메라에 그녀의 예쁜 모습을 담을 생각에 조금은 설레어하면서.

쏴아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마침 근처에 있던 선물의 집에 급히 들어선 두 사람은 막연한 표정으로 밖을 바라봤다. 팔랑팔랑, 봄바람에 나부끼던 스커트 자락이 그녀의 기분을 대변하듯 추욱 가라앉았다.

미안. 역시 나 때문인 거 같네.”

볼을 긁적이며 난처하게 웃는 모습이 처연했다. 후지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녀를 선물의 집 안쪽으로 이끌었다. 첫 데이트 기념으로 선물을 골라야하지 않겠냐고 그녀를 재촉하며.

 

 

신칸센의 빠른 속도에 유리창에 부딪혀 옆으로 흐르는 빗줄기를 보며 후지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떴다. ‘네가 없는데도 여전히 비가 내려. 사실은 네가 아메온나가 아니라, 내가 아메오토코雨男였던 게 아닐까.’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후텁지근한 공기도 한차례 비가 쏟아지고 나면 조금은 시원해지리라. 조금씩 낮이 짧아지는 만큼 밤은 길어질 터고, 날씨는 아침저녁으로 점점 더 선선해지겠지. 여름이 지나 건조한 가을이 오면 비 내음이, 비가 가져다주는 온갖 기억들이, 단풍잎처럼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수 있을까.

 

 

 

Posted by De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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