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 토도 진파치

페달 2014. 8. 16. 23:51

- 전력 60분이 시작되었습니다! 주제는 [ 욕심 ] 으로 11~12시 사이에 연성을 해주신 뒤 #겁페_전력60_글쓰기 해시태그를 달아주세요!

 

 

욕심, 토도 진파치 @kaihuayul

 

이틀 동안 진행되는 체육대회와 축제의 피날레는 연극이었다. 연극은 축제에서 꽤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런 만큼 각 학년에서 투표를 통해 주연 배우를 캐스팅했다. 그리고 올해의 주연 배우는 토도였다. 토도는 압도적인 득표율을 자랑하며 주인공의 자리를 꾀어 찼고, 모두는 토도가 왕자님일 거라 기대했다.

다만 연극의 주연 배우 투표에는 한 가지 함정이 있었는데, 투표가 진행되기 전 공연으로 올릴 작품은 공개가 되지만 대본은 연극부 학생들에 의해 모두 각색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이야기와 진행이 전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었다.

 

체육대회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학생들도 주변의 분위기에 휩쓸려 어느 정도 텐션이 업된 시간, 무대를 가리던 커튼이 서서히 열리며 무대 중앙에 서 있는 인물이 관객들 눈에 들어왔다. 가발을 썼는지 탐스럽게 쪽지어 올린 머리와 그 위에 쓴 왕관, 팔꿈치 위로 길게 올라간 opera glove와 까만색의 긴 드레스. 그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소화한 인물은 다름 아닌 토도였다.

무대 위의 인물이 누구일까 웅성거리던 객석은 , 저거 토도 아냐……?’라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기점으로 엄청나게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토도는 객석의 소음에도 아랑곳 않고 태연스레 연기를 계속했고 경악으로 물들었던 학생들은 점차 토도의 연기에 빠져들었다. 토도가 맡은 역할은 왕비, 즉 백설 공주의 새엄마였다.

 

와핫핫.”

경박하지만 당당한 토도의 웃음소리를 마지막으로 무대 위의 커튼이 양쪽에서 밀려와 토도의 모습을 가렸다. 토도의 모습이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졌지만 여학생들의 함성은 식을 줄 몰랐고, 커튼콜을 외치는 관객들의 요구가 거세게 빗발쳤다. 하지만 닫힌 커튼은 다시 열리지 않았고 사회를 맡은 학생만이 나와 곧 시상식이 이어짐을 알렸다.

 

 

토도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은 꽤 다양했다. 자칭 슬리핑 뷰티를 비롯해 산신, 닌자. 그리고 하코네 학원 자전거 경기부 에이스 클라이머 토도 진파치. 제법 화려한, 그래서 부담이 될 수도 있는 수식어들이 토도를 따라다녔지만 토도는 그걸 즐기는 편이었다. 이번 연극에서도 토도의 그런 장점이 충분히 발휘되었고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토도의 배역은 도리어 토도의 새로운 매력 포인트로 사람들에게 다가왔다. 축제를 마친 뒤 수직상승한 토도의 인기는 토도의 책상과 사물함에서 고스란히 나타났다.

 

이런 녀석, 뭐가 좋다는 거야 대체.”

사물함과 책상 서랍에 들어있던 선물들을 쇼핑백에 담아 부실로 가져온 토도를 보며 아라키타가 비아냥거렸다.

이 몸에게 이 정도 인기는 당연한 거 아니겠어!”

. 그거 진심이냐?”

토도의 나르시시즘이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지만 요즘은 그 정도가 심했다. 자전거부 부원들은 아무래도 연극의 후유증이 아닐까 하고 짐작하는 중이었다. 누구보다 먼저 무대 위의 토도를 알아본 부원들은, 의외로 토도가 백설 공주의 새엄마 왕비 역할이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금세 인정했다. 다만 그게 왜 여학생들이 환호하는 요소가 되는 건지는 아무래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서실로 향하던 토도의 발걸음은 한 무리의 여학생들을 만나면서 멈춰졌다. 까르륵 거리는 여아들의 웃음이 한바탕 몰려가고 걸음을 옮기는 토도의 손에는 아까는 없던 것들이 들려있었다.

. 좀 곤란한걸.”

자신에게 향하는 관심을 즐기는 토도였지만 그건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였다. 지금처럼 손에 들린 선물들 때문에 정작 가려던 도서실은 들르지 못하고 다시 교실로 돌아가야 하는 일이 빈번해지는 건 별로 좋지 않았다.

 

진파치!”

, 토도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하루노가 말을 걸었다.

오늘도 잔뜩이네?”

, 이 몸이니까.”

하루노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는 토도의 말투가 평소와 달리 가라앉아 있다는 걸 금세 알아차렸다. 그렇다면,

왕비마마. 신에게 왕비마마를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주시겠나이까.”

허락하노라.”

장난기 가득한 하루노의 언행에 토도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 이거. 도서실에 가려던 이유가 이 책 맞지?”

놀란 표정의 토도에게 하루노가 설명을 덧붙였다.

사카키 선생님 수업, 우리 반도 지난주에 과제 나왔거든. 아마 지금 도서실에 가봐야 전부 나가고 없을걸? 대출기간은 며칠 안 남았지만 서두르면 과제하는데 지장은 없을 거야.”

……고마워.”

책 제때 반납하는 거 잊지 말고.”

잠깐, 유카……!”

당황한 토도가 하루노를 불렀지만 제 할 말을 마친 하루노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왕비 역할이 그렇게 잘 어울릴 건 또 뭐람. 그렇지 않아도 인기 많았는데 요즘은 아주 그냥 연예인이잖아.’ 미처 토도에게 하지 못한 말을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왕이든 왕비든 좋으니까 나만의 진파치일 때가 좋았다고. 바보 진파치.”

삐죽삐죽, 마음속에만 담아두었던 말이 결국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자신은 처음부터 토도가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토도의 진가를 알아본 사람들도, 그리고 속없이 그걸 다 받아주는 토도도, 하루노는 모두 못마땅했다.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리는 걸까.”

한숨과 함께 하루노의 마음도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마치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는 것처럼.

 

 

오해, 토도 진파치 http://kaihuayul.tistory.com/16 로 이어집니다.

 

 

 

Posted by Dein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