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이바나시 :: , 이별, 얼음이 녹기 전

마나미 산가쿠 for 천가유

 

 

여름, 3일 간의 인터하이 끝에 하코네는 결국 왕자의 자리를 내주었다. 단순히 레이스 도중 스프린트 포인트를 내주어서 잠깐 선두가 바뀌거나 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언제나 하코네의 자리라고 생각했던 15cm 높이 위의 왕좌에서 내려온 것이었다. 그것도 자신으로 인해.

자전거가, 언덕이 좋았던 건, 언덕을 오를 때 내뱉는 가쁜 숨만이 자신이 살아있다는 걸 만끽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승리에 연연한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페달을 밟아 언덕을 오르는 게 즐거웠고, 자신과 같이 언덕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최선을 다했지만 승리한 것은 오노다였고, 오노다와 함께 달릴 수 있어서 좋았기에 웃으며 오노다의 승리를 축하해주었다.

하지만…… 눈물이 나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졌다는 것, 하코네가 2위라는 것. 그 모든 게 처음이었고, 그만큼 생소하지만 절실한 감정이 마음속 한편에 자리 잡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번이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마지막 인터하이였을 선배들은, 왕자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준우승이라는 이름으로 졸업을 해야 하는 3학년 선배들은 오히려 덤덤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었다. 내년에 왕자의 자리를 되찾아 오라고.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된, 후쿠토미를 주장으로 한 3학년들이 은퇴하기 바로 직전이었다.

진파치.”

신카이가 토도를 부르며 고갯짓으로 마나미를 가리켰다. 페달을 밟는 것에도, 부활동이나 수업에도 언제나 자유롭던 마나미였다. 가끔은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로 언제나 해맑게 웃고 있었는데 요즘의 마나미는 그렇지를 못했다. 내년의 새로운 인터하이를 위해 후배들에게 바통을 넘길 채비를 하던 3학년들의 눈에 그런 마나미의 모습은 그냥 내버려 둘 수 없는 문제였다.

슬슬 준비 운동도 된 것 같고, 그럼 나가서 달려볼까나. 어이, 마나미. 이 산신님과 달릴 수 있는 영광을 주지.”

토도는 언제나처럼 거만하고 당당한 표정으로 마나미를 불렀다. 어쨌거나 토도에게도 마나미는 귀여운 클라이머 후배였으므로.

토도는 마나미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계속해서 마나미와 함께 언덕을 오르고, 또 올랐다. 토도는 처음 소호쿠 합숙을 정찰하고 다녀와 반짝반짝 빛나던 마나미를 기억했다. 마키시마를 보라고 보냈건만 정작 마나미가 보고 돌아온 건 오노다였다. 토도는 자신에게 마키시마가 있었듯, 마나미에게도 오노다가 그런 존재이기를 바랐다. 분명 인터하이까지만 하더라도 그랬던 것 같은데……. , 말로 타이르는 것도 좋지만 페달을 밟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될 거라고 토도는 생각했다. 상냥하게 조언을 하는 건 아라키타에게 맡겨두자고, 토도는 정작 당사자가 들으면 어이없어 할 생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면서 오르막을 향해 힘껏 페달을 밟았다. 마나미의 가슴에 스며든 얼음이 녹으려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모양이었다.

 

학생들이 하나, 둘 춘추복에서 동복으로 옷을 바꿔 입기 시작했다. 바스락거리며 발치에 치이던 낙엽들도 어느덧 모두 사라지고, 더 이상 떨어질 나뭇잎 하나 달려있지 않은 앙상한 가지들만 남아 겨울을 준비했다. 메마른, 그러나 폐 속 깊이 들어오는 깨끗하고 시원한 공기를 느끼며 마나미는 소호쿠로 향했다.

선배들이 여러모로 노력해 주었지만 마나미는 자신 때문에 하코네가 져버렸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는데 한참의 시간과 감정을 소비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죄책감과 이별해야 할 때였다. 인터하이 마지막 날, 시상대에 오르기 전 후쿠토미 선배와 약속한 것을 지키려면 더 이상 이런 마음가짐이어서는 곤란했다. 오노다와 함께 다시 한 번 언덕을 오른다면 뭔가 달라질 거라는 느낌이 마나미에게 강하게 몰려왔다.

 

겨울이 되어서야, 마나미의 긴 여름이 끝을 보였다. 그리고 여름의 끝에 온 것은 가을이 아니라, ‘오노다 사카미치라는 새로운 봄이었다.

 

 

 

Posted by De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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