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고양이가 찾아왔다
키워드 : 마카롱 장갑 고양이
부 제 : 운명의 고양이
리본(Reborn) x 나카지마 코토리(中島 小鳥)
서율
#1.
“미야옹-.”
마치 정장을 입은 양 까만 몸에, 하얀 턱시도와 장갑을 낀 매력적인 고양이는 어느 날 나카지마의 귀갓길에 나타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아직 어려보이는 모습과 빤히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 마음이 쓰여 몇 번 쓰다듬어줄 요양으로 눈높이를 맞추고 손을 내밀었을 뿐인데, 그대로 고양이에게 간택당한 모양이었다.
안된다고 연신 고양이를 밀어냈지만 꿋꿋이 그녀를 따라온 고양이는 결국 나카지마의 집에 입성했다. 급한대로 마트에서 사료를 구매해 그릇에 담아주었지만 함께 놓인 물만 몇 번 할짝였을뿐 사료에는 입도 대지 않았다. 날렵해 보이는 몸매만큼 날랜 동작으로 책장 위로 올라간 고양이는 그루밍을 하는가 싶더니 곧 잠이 들었다.
‘식사를 한지 얼마 되지 않은 걸까.’
물은 마셨으니 그래도 괜찮겠지 하고 애써 마음을 달랜 나카지마는 잠이 든 고양이 위에 담요를 덮어주고 자신도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나카지마는 바쁘게 출근을 준비하면서 다시 사료 한 그릇과 물 한 그릇, 혹시 몰라 고양이용 우유까지 챙긴 뒤 인사를 하고 회사로 출근했다.
사무실에 도착해 고양이를 키우는 동료에게 어제의 일을 설명하고 조언을 구하자 동료는 인식칩이 있을지도 모르고, 길고양이라면 건강상태 확인을 위해서라도 동물병원에 먼저 가보는 게 좋겠다는 말을 해주었다. 나카지마는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이른 퇴근을 하며, 마트에 들러 이동장을 구매해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똑똑-
자신의 집이지만 혹여 고양이가 놀랄까 노크로 인기척을 낸 뒤 나카지마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열린 틈사이로 고양이가 달려 나갈까 걱정하며.
“고양아-?”
나카지마가 들어서자 동작을 인식한 현관 등에 반짝- 불이 들어오고, 이어서 도어록이 삐리릭- 소리를 내며 닫히자 방에서 고양이가 유유히 걸어왔다.
“야옹.”
마치 다녀왔냐는 인사를 하듯 울음소리와 함께. 그 모습에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낀 나카지마는 천천히 몸을 낮춰 고양이와 눈을 마주하고 인사했다.
“다녀왔어.”
그 인사에 알겠다는 제스처를 취하듯 고개를 한 번 끄덕인 고양이는 다시 몸을 돌려 책장 위로 올라갔다. 누군가 집에 있다는 건, 반겨준다는 건 이런 거구나. 중얼거리며 고개를 주억거리는 나카지마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어렸다.
“아.”
기쁨도 잠시, 나카지마는 급히 신발을 벗고 집안으로 들어가 아침에 사료 그릇을 놓아둔 자리를 확인했다. 나란히 놓인 그릇 세 개는 아침과 큰 차이가 없었다. 물과 우유는 조금 줄어든 것도 같았지만 사료는 아마 한 알도 줄지 않았을 것 같았다. 혹시 어디가 아픈 걸까. 나카지마는 더욱 걱정이 되어 고양이를 불렀다.
“고양아.”
나카지마의 부름에 담긴 약간의 망설임을 쉬이 눈치 챌 만큼 영리한 고양이는 책장에서 사뿐히 뛰어내려 나카지마의 앞으로 다가와 애교를 부렸다. 그 행동에 또 마음 한 구석이 간지러웠지만 나카지마는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고양아, 병원에 가보자. 네 주인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고양이의 까만 털은 짧지만 윤기가 흘렀고, 동작에는 여유가 있으며, 사람에게 다가오는데 익숙해 보였다. 누군가가 정성을 다해 돌봤을지도 모르는 고양이. 주인이 있다면 지금쯤 애타게 찾고 있을 터였다. 근처에 고양이를 찾는 전단지가 붙어 있지는 않았지만, 근방에 있는 동물병원이라고는 한 곳밖에 없으니 병원에서는 주인을 알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행히 고양이는 이동장에 익숙한지 자연스럽게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그 모습에 두려움이라고는 티끌 한 점 보이지 않아, 나카지마는 자신도 모르게 멈칫했지만 그걸 알아차린 건 이미 이동장에 들어간 고양이 뿐이었다.
* * *
“매우 건강합니다.”
“다행이네요. 그럼 혹시 칩이나 주인은….”
“아쉽게도 이 고양이에게는 인식칩이 없네요. 이 병원에 다닌 기록도 없고요.”
“….”
“운명의 고양이라고 하죠.”
“운명의 고양이요?”
“보통 이런 경우를 보고 고양이가 집사를 간택했다고 하거든요.”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는 수의사의 표정이 담백해 마치 나카지마가 고양이를 키우는 게 당연하다는 투였다.
“…위탁으로 하죠. 혹시 이 아이를 입양해줄 사람을 병원에서 알아봐줄 수 있나요?”
“가능합니다.”
“아, 나이는 어떻게 될까요?”
“글쎄요, 다 자란 것 같지만 아직 어린 티가 남아있는 걸 보면 한 살에서 두 살 사이가 아닐까, 싶군요. 그나저나… 하얀 리.본.이 참 잘 어울리는 아이네요.”
“하얀 리본이요…?”
보통 턱시도라고 표현하던데 이 사람의 눈에는 또 다르게 보이는 걸까. 하지만 듣고 보니 하얀 보타이를 멘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자신을 제외하고 이야기 나누는 두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고양이는 불만을 표하듯 꼬리로 툭 수의사를 건드렸다.
어쨌든 고양이는 청소년기로 추정됐고, 진료를 마친 나카지마는 고양이가 먹을 사료와 간식, 그리고 필요한 물품들을 추천받아 계산했다. 친절하게도 병원은 배송 서비스를 제공했고 나카지마는 지금 당장 필요한 약간의 것들만 챙겨 감사 인사를 하고 병원을 나섰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아, 고양이 이름이 정해지면 알려주시고요.”
직접 배웅을 나온 수의사가 닫히는 문틈으로 고양이의 간단한 정보가 기록된 종이를 팔락이며 나카지마와 고양이에게 인사했다. 어쩐지 수의사가 짓궂게 웃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착각이겠지.
#2.
병원에서 가져온 사료를 그릇에 담아 내려주자 다행히 이번에는 고양이가 관심을 보였다. 냄새를 맡는가 싶더니, 혀를 내밀어 맛을 한 번 보고 곧 찹찹 소리를 내며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안도의 숨을 내쉰 나카지마는 쪼그려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식사를 준비했다.
나카지마보다 일찍 식사를 마친 고양이는 이제 자신의 지정석이 된 책장 위로 올라가 그루밍을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느라 밥 먹는 것도 잊고 있던 나카지마는 고양이의 불만스러운 울음소리를 듣고서야 식사를 재개했다. 나카지마가 젓가락을 들고 다시 식사를 시작하자 고양이도 그루밍을 이어갔다.
‘아침, 저녁 식사 후에 주시면 됩니다.’
나카지마는 츄파춥스처럼 생긴 사탕을 들고 고민했다. 정말 이걸 줘도 되는 걸까. 병원에서 고양이는 치아 관리가 중요하지만 처음부터 양치질은 어려울 테니 ‘덴탈 캔디’로 시작하는 게 좋다며 서비스로 준 물건이었다. 나카지마가 고민하는 사이 어느새 책장에서 내려온 고양이는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이 자신의 것인 줄 이미 아는 양 빨리 내놓으라며 짧게 울었다.
“관심을 보이는 건 다행이긴 한데… 간식 아닌 걸 알고 내동댕이치면 어쩌지.”
걱정을 하며 포장지를 벗기는데 비닐의 바스락 소리에 고양이의 귀가 쫑긋 서는 게 보였다. 그 모습이 귀여워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은 뒤 사탕을 고양이에게 내주었다. 사탕을 물고 다시 책장 위에 높인 캣배드에 안착한 고양이는 능숙하게 막대를 앞발에 끼우고 사탕을 핥기 시작했다. 혹 고양이가 사탕을 몇 번 먹고 마는 것은 아닐까 염려했던 것이 무색하게 고양이는 열심히 사탕을 먹고 있었다. 그제야 안심한 나카지마는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찰칵 소리에 잠시 나카지마를 바라본 고양이는 이내 관심을 사탕으로 돌렸다.
휴대폰 속의 고양이를 바라보면 나카지마는 새로운 고민을 시작했다.
‘고양이 이름이 정해지면 알려주시고요.’
당분간이지만 임시보호를 하기로 결정한 이상 고양이의 이름을 정해야했다. 사실 병원을 나설 때 수의사의 한 마디가 아니었다면 나카지마는 계속 고양이라고 불렀을지도 몰랐다. 변명을 하자면 나카지마의 네이밍 센스가 별로라는 것과, 고양이라고 불러도 자신을 부르는 줄 알고 반응해주는 고양이 탓이 컸다.
“그냥 고양이라고 부르면… 안되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고양이라는 이름도 괜찮은 것 같은데. 야옹이 보다는 낫지 않나?’ 따위의 생각을 이어가던 나카지마는 휴대폰 속 사진이 아닌 실물의 고양이가 눈앞에 나타나자 바로 말을 바꾸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자신을 지긋이 바라보는 고양이의 눈을 마주하니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대신 고양이에게 말을 걸었다.
“고양아, 네 이름을 지어야 하는데… 네가 골라볼래?”
“냐아.”
스스로 말을 하면서도 어이없었던 나카지마와 달리 고양이는 이번에도 그녀의 말을 알아들은 듯 대답했다. 혹 나카지마가 알아듣지 못할까 걱정했는지 고개까지 끄덕여주며.
“음, 그럼 고양이…?”
“먕!”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나카지마가 고양이라는 이름을 가장 먼저 꺼내보지만 단칼에 거절당했다.
“나비?”
“캬앙-!”
그 뒤로 야옹이, 까망이, 까망베르, 치즈 등의 이름을 이야기했지만 고양이의 반응은 단호했다. 나카지마의 헛발질에 고양이가 답답한 듯 자신의 가슴-턱시도 고양이라 불리는 이유인 가슴의 하얀 털이 있는 부분-을 두드렸다. 사람이 답답할 때 가슴을 두드리듯. 그걸 본 나카지마의 표정이 묘해지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이야기했다.
“턱시도…는 아닌 거 같고, 보타이…도 아니겠지. 그러면은 리본…?”
“냐아.”
‘하얀 리.본.이 참 잘 어울리는 아이네요.’
고양이의 눈치를 보며 하나씩 꺼낸 단어 중 ‘리본’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짧게 긍정한 고양이의 표정이 어쩐지 웃고 있는 것 같아 나카지마의 머릿속에 수의사의 말이 번뜩 떠올랐다. 설마 그때 수의사의 말이 마음에 들었던 거였어? 리본이면 대체 나비랑 뭔 차이인가 싶었지만 고양이 스스로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으니 그걸로 된 거겠지. 나카지마는 마음속으로 애써 납득하며 고양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고양아… 이름은 리본, 응, 리본. 한동안 잘 부탁해.”
마치 사람에게 악수를 청하는 것처럼 내민 손에 고양이 아니, 리본은 자연스럽게 앞발을 내밀어 나카지마의 손을 툭 건들었다. 나카지마와 리본의 동거가 시작된 둘째 날이었다.
#3.
새로운 식구가 들어왔다지만 나카지마의 공간은 크게 변한 게 없었다. 책장 위에 캣배드가 놓이고 식탁 옆에 리본을 위한 작고 낮은 식탁이 하나 더 자리한 것, 마지막으로 화장실 앞에도 리본을 위한 공간이 마련된 게 전부였다. 그래도 이전과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이라면, 출퇴근 시에 인사할 상대가 생겼다는 정도일까.
“리본, 다녀올게.”
나카지마는 현관 앞에서 꼬리를 살랑대며 그녀를 배웅하는 리본에게 인사를 하고 출근길에 나섰다. ‘마음 같아서는 뽀뽀도 하고 싶지만 그건 리본이 싫어하겠지.’라고 생각하며. 자신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나카지마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 * *
이름이 정해진 다음날 나카지마는 출근하자마자 병원에 전화를 걸어 고양이의 이름이 리본이 되었음을 알렸다.
‘귀여운 이름이네요.’
‘….’
‘그래도 잘 어울리는군요. 그 고양이에게.’
‘본인이 그 이름을 마음에 들어 하니 어쩌겠어요.’하는 나카지마의 속마음을 읽은 듯 수의사는 고양이와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며 나카지마를 위로했다.
“어머, 이름이 리본이야?”
“네, 사진 보시겠어요?”
병원과 통화를 마치자 관심을 보이는 동료들에게 나카지마는 어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미 고양이 집사인 한 동료의 조언은 수의사가 해줬던 이야기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츄르와 캣닙을 선물해준다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경청했다.
한 장 밖에 없는 사진이지만 리본이 사진 찍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는 말에 사람들은 쉽게 긍정했다.
“고양이 사진 찍기 어렵지.”
“맞아, 숨거나 잔상만 남고.”
“실물이 최고야.”
여건상 고양이를 기르지는 못하더라도 길냥이에게 밥 한 번씩은 줘본 적 있는 캣맘들은 즐겁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런데 길냥이였으면 목욕 한 번 하는 게 좋지 않을까?”
“….”
“나카지마, 힘 내….”
“가끔은 얌전한 아이들도 있으니까, 아주 가끔이지만.”
“마침 주말이니까… 시도해봐야겠네요.”
나카지마의 한숨어린 말에 모두가 그녀를 응원했다.
* * *
퇴근길 다시 병원에 들러 목욕에 필요한 샴푸와 브러시 등을 추천해달라는 나카지마에 수의사는 굉장히 이상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일그러진 얼굴은 웃음을 참는 것 같기도 하고 걱정을 하는 것 같기도 한 요상한 표정이었다.
“목욕, 이요…?”
“네, 길에서 지냈다면 목욕을 시키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를 들어서요.”
“그건… 그렇기는 하죠.”
‘보통의 고양이라면 말이죠.’
그 리본이 과연 얌전히 몸을 맡기고 목욕을 할까. 마음속으로 하고 싶은 말을 꾸욱 삼킨 사와다는 어쨌든 리본의 취향이라고 생각되는 것으로 골라 나카지마에게 고양이 목욕 용품을 추천했다. 물론 서비스로 ‘커피향 덴탈 캔디’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부디 에스프레소로 만든 사탕 뇌물이 리본에게 통하길 기도하면서.
“대체 리본은 무슨 생각이람.”
나카지마가 병원에서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사와다는 아파오는 머리를 꾹꾹 눌렀다. 분명 자신이 언제까지 한가로이 이 병원을 지키고 있을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 터인데, 리본을 되돌릴 방법은 아직 찾지도 못했는데. 리본은 사와다와 함께 성으로 돌아가길 거부하고 나카지마의 집에 눌러 앉았다.
나카지마 코토리. 그녀에게 이번 일을 풀 실마리라도 있는 걸까. 고양이가 된 리본이 거리에서 나카지마와 마주친 순간 고쿠데라에게 지시를 내린 사와다가 그녀에 대한 모든 정보를 보고 받기까지는 채 몇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만큼 이쪽 세계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와다나 수호자들과는 일면식이 없는 민간인이라는 소리였다. 그런 그녀가 리본과 어떤 접점이 있기에 리본이 나카지마를 따라 그녀의 집으로 간 것인지 사와다는 스승의 생각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아니면 스스로를 정말 고양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설마, 하는 생각을 하며 사와다는 머릿속으로 앞으로의 일정을 조율했다.
#4.
“자랐군.”
하루 사이에 눈에 띄게 자란 리본을 보며 샤멀이 중얼거렸다.
“성장 속도가 비정상적이라는 걸 제외하면, 별다른 특이점은 없어. 아,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다는 것도 추가해야겠군.”
히죽이는 샤멀의 반응에 리본은 당장이라도 총을 날릴 것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아쉽게도 현재 리본의 손은 총을 쥘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사무실이 난장판이 되지 않은 데 감사하며 사와다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물었다.
“방법은?”
“없어.”
“….”
“알 수 없는 빛이라며.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원인을 분석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
바로 어제, 적대 조직과의 항쟁에서 알 수 없는 빛이 리본을 향해 쏘아졌고, 눈부신 빛이 번쩍이고 난 자리에 나타난 건 까맣고 하얀 아기 고양이 한 마리였다. 레온과 별 차이 없어 보이는 크기의 고양이를 본 사와다는 갑작스런 빛에 모두가 멈칫한 사이 서둘러 레온과 함께 고양이를 낚아채 품안에 감추었다.
어디에서 나타난 빛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심지어 적들도 모르는 것 같았다- 리본이 고양이가 된 걸 알면 외부적으로도, 내부적으로도 혼란스러울 게 뻔했기에 사와다는 서둘러 현장을 정리하고 본고레 성으로 돌아와 아무도 모르게 샤멀을 찾았다.
고양이의 혈액과 털을 채취해 검사한 샤멀이 알아낸 사실은 지극히 단순했다. 그냥 고양이였다. 아무런 능력이 없는 평범한 고양이. 하룻밤 만에 덩치가 두 배가 된 걸 제외하면 그랬다. 한숨을 내쉬는 사와다와 달리 리본과 샤멀은 침착했다. 그렇다면 뭔가 방법이 없지는 않다는 거겠지. 초직감 또한 잠잠했다. 내심 안도한 사와다의 마음에 재를 뿌리듯 샤멀이 코웃음 쳤다.
“이 속도면 고양이의 평균 수명을 생각했을 때 길어봐야 열흘이야.”
“…?!”
“야옹-.”
“리본…?”
샤멀의 심각한 말에도 리본은 관심이 없는지 문 앞으로 다가가 문을 두드렸다. 명백한 나가겠다는 의사 표현에 사와다가 기겁하며 말렸지만 샤멀은 가차 없이 문을 열었다.
“샤멀!”
“본인은 방법을 알지도 모르지.”
“그게 무슨…! 리본!”
달려 나간 리본을 쫓아간 사와다는 덕분에 샤멀의 마지막 말을 듣지 못했다.
“그게 아니라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는 지도 모르고.”
* * *
리본은 얌전하고 조용한 고양이였다-고 나카지마는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생각했다. 리본과의 동거 3일째, 나카지마는 리본의 목욕을 시도했다.
욕실에 따뜻한 물을 받고, 샴푸와 수건을 준비하고, 헤어드라이기까지 잘 챙긴 나카지마는 며칠 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본적 없는 리본의 날카로운 반응에 당황했다. 쉬는 날인데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는 나카지마의 모습에 뭔가 수상한 기색을 눈치 챈 리본은 그녀의 가슴높이에 오는 책장이 아니라, 그녀의 키보다 높은 냉장고 위로 훌쩍 올라가 털을 세웠다.
“리본?”
“….”
“리본, 괜찮아. 그냥 목욕을 하려는 거야.”
“흥.”
고양이가 코웃음을 쳤어…?! 고양이의 얼굴로 훌륭하게 코웃음을 지어 보인 리본은 나카지마에게 보여주듯 그루밍을 시작했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시위에 나카지마는 금세 리본의 목욕을 포기했다.
“그래, 네가 싫다면 다음에 하자.”
“미야옹-.”
“응, 그러니까 얼른 거기서 내려오자, 리본.”
나카지마의 부름에 가볍게 바닥에 착지한 리본은 헤어드라이어와 수건이 준비된 곳에 자리를 잡고 꼬리를 살살 흔들었다.
“음, 빗질은 괜찮아…?”
“냐아-.”
어쩌다 이런 고양이를 만났는지. 이래서 운명의 고양이라는 걸까. 첫 만남부터 오늘까지 온통 리본에게 휘둘리기만 한 것 같아 나카지마는 헛웃음을 지었다.
“리본, 널 어쩌면 좋니.”
계속 키울 자신은 없는데.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나카지마는 잘 알았다. 일찍 부모님을 여읜 나카지마는 알 수 없는 이의 후원으로 무사히 대학을 졸업해 지금의 직장에 입사했다. 나카지마의 취직이 결정되자 익명의 후원자는 마지막으로 지금의 집을 나카지마에게 선물하고 연락을 끊었다.
졸업과 취직을 축하한다거나, 앞으로도 건강하게 열심히 잘 살라거나, 혹은 그동안 고생했다거나. 그 어떠한 말도 없었다. 부모님의 부재 뒤 후원자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그리고 빠른 안정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던 나카지마에게 이 관계의 완벽한 단절이 주는 상실감은 생각보다 깊었다.
그리고 그 비어버린 공간에 들어온 것이 리본이었다.
“리본.”
나카지마가 서툰 솜씨로 조심조심 빗질을 하는 동안 얌전히 몸을 맡긴 리본은 그녀의 손에 머리를 비볐다. 쓰다듬어도 괜찮아. 리본의 신호에 나카지마가 빗을 내려두고 리본의 체온을 느끼며 마음을 달래는 동안 리본은 묵묵히 그녀의 곁을 지켰다.
#5.
주말은 금방 지나갔고 다시 리본을 두고 출근해야 하는 월요일이 돌아왔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는데, 어쩐지 출근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머뭇거리는 나카지마를 나무라듯 리본이 현관 앞에서 꼬리를 탁탁 두드렸다.
‘출근해야지.’
리본이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말하고 있을 것 같았다.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눈으로 보이는 말에 나카지마가 피식 웃었다.
“네, 네. 출근해야지.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나카지마는 오늘도 리본과 눈을 맞추고 인사한 나카지마는 씩씩하게 문을 나섰다.
* * *
“입양이요….”
“네. 기존에 동물을 키웠던 적도 있고, 고양이에 대한 지식도 해박해서 리본의 입양자로 적임자라고 판단돼서요.”
“다행, 이네요.”
“….”
“…내일 낮에, 리본을 데리고 병원으로 갈게요.”
상냥한 수의사의 탈을 쓴 사와다는 나카지마의 입에서 리본을 데려온다는 말이 나오기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었다. 통화를 끝내고 내일을 위해 연가를 신청하는 나카지마를 동료들이 위로했다. 아직, 운명의 고양이가 나타나지 않은 거라며.
하루 종일 나카지마의 마음은 이리저리 흔들렸다.
입양 공고를 조금 늦게 낼 걸 그랬나.
지금이라도 내가 키운다고 할까.
아냐, 좋은 집사가 나타났을 때 보내줘야지.
내가 책임질 자신도 없으면서.
그래도,
그래도….
퇴근시간이 되어 회사를 나서는 나카지마의 발걸음은 평소와 달리 더디고 무거웠다. 남은 시간을 생각하면 빨리 집에 가서 리본을 만나고 싶은 마음과, 지금 이런 기분으로 리본을 보면 펑펑 울어버릴 것 같아 조금이라도 늦게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충돌했다.
아무리 걸음을 늦춰도 정해진 거리는 일정했고 결국 집에 도착한 나카지마는 또다시 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며 시간을 보냈다. 안에서 리본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야옹, 미야옹-.”
밖에서 망설이는 나카지마에게 어서 들어오라고, 재촉하는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듣고서야 나카지마는 똑똑, 힘없는 노크를 하고 도어록의 번호를 눌렀다.
“리본, 다녀왔어.”
흐리지만 미소를 짓는데 성공한 나카지마가 인사했다.
* * *
충분히 윤기가 흐르고 가지런한 털이지만 혹시 몰라 두어 번 더 빗질을 하고 목에는 빨간색의 나비넥타이를 둘러주었다.
“멋있다, 리본. 잘 어울려.”
보타이까지 메자 정말 턱시도를 입은 양 리본에게 잘 어울려 와중에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리본이 이동장에 들어가기 전 그 모습을 사진에 담은 나카지마는 조금 더 몸을 숙여 촉촉한 고양이의 코를 자신의 코로 한 번 툭 건들고, 스쳐지나가듯 리본의 입에 자신의 입을 마주했다.
“자, 이제 들어가자.”
그 작은 애정 표현에도 부끄러워 리본과 눈을 마주하지 못한 나카지마는 때문에 리본의 눈빛이 달라지는 걸 보지 못했다.
집에서 병원은 가까웠고, 금세 도착한 병원에는 이미 리본의 새로운 주인이 될 이가 먼저 와 있었다.
“아름, 아. 안녕하세요, 샤멀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나카지마 코토리입니다.”
헛소리를 하려는 샤멀을 순식간에 팔꿈치로 응징한 사와다 덕분에 나카지마는 정상적으로 샤멀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수더분해 보이는 첫인상을 준 샤멀은 직업이 의사라고 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눈 샤멀이 리본을 안아들었다.
“이름이 리본-ribbon-이라고요?”
“네. 음, 믿기시지 않겠지만 리본이 스스로 고른 이름이에요.”
나카지마는 차마 자신의 네이밍 센스가 너무 엉망이어서 그런 것 같다는 말은 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리본이 스스로 택한 이름인 건 분명했다.
“정말 잘 어울리는 이름이네요. 저도 계속 그 이름으로 부르고 싶군요. 아가씨께서 괜찮으시다면.”
“그, 물론이죠. 저야 그래주시면 오히려 감사한걸요.”
나카지마는 낯선 호칭에 잠시 당황했지만 리본의 이름을 그대로 부른다는 말에 기쁜 마음을 담아 미소 지었다. 샤멀의 품안에서 어딘지 불쾌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리본에게 나카지마는 마지막으로 인사했다.
“리본, 앞으로도 건강하게 잘 지내자.”
리본이 고양이가 된지 7일째, 나카지마와 만난 지 6일째. 두 사람은 이별했다.
#6.
샤멀은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표정으로 병원을 나서는 나카지마에게 빈말로라도 가끔이라도 리본의 소식을 들려주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고, 나카지마 역시 그러한 부탁을 하지 않았다. 그저 좋은 집사를 만났으니 이제 리본이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건강하라는 인사 한 마디를 겨우 건넸다.
샤멀의 품에 안긴 리본의 표정이 좋지 않았던 게 마음에 걸렸지만, 그 표정을 보니 그래도 자신과 보낸 시간이 리본에게 나쁘지 않았던 모양이라며 위안 삼을 수 있었다.
나카지마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리본은 바로 샤멀의 품안에서 뛰쳐나왔다. 자신을 리본-ribbon-이라고 부른 샤멀의 옷에 고양이의 날카로운 발톱으로 쭈욱 스크래치를 내고서. 곧장 사와다의 어깨로 올라간 리본이 사와다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본고레 성으로 돌아갈 것을 재촉했다.
본고레 성에 돌아온 리본은 성에 배정된 자신의 공간으로 향했고, 곧 사람의 모습으로 두 사람의 앞에 나타났다.
“돌아왔군.”
멀쩡히 돌아온 스승의 모습에 사와다가 안도의 숨을 내쉰 것도 잠시, 태평하게 담배를 물던 샤멀이 탕 소리와 함께 몸을 피했다. 샤멀이 몸을 피한 자리로 총알이 날아가며 담배를 반 토막 냈다.
“공주님의 키스라도 받았나?”
“샤멀!”
총알에 조금도 개의치 않은 샤멀은 도리어 즐거운 얼굴로 리본을 도발했다. 사와다가 질린 얼굴로 다급히 샤멀을 말려보지만 그의 스승은 이미 샤멀을 그냥 두지 않기로 결정한 모양이었다. 날아다니는 총알에 몸을 피하며 사와다가 중얼거렸다.
“차라리 고양이가 좋았을지도….”
* * *
눈부시게 흰 셔츠와, 그에 대비되는 모든 색을 삼킬 것만 같은 검은색 턱시도. 그 안에서도 눈에 띄는 살짝 작은 듯 보이는 빨간색 보타이. 또, 손에는 분홍색 장미와 마카롱으로 만든 꽃다발을 한 손에 든 남자는 누가 봐도 애인을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모습에 나카지마는 누군지 몰라도 굉장하다고 생각했다. 설마 그 굉장한 일이 자신에게 닥친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하고서.
“주웠으면 마지막까지 책임져야지.”
“네…? 저한테 하시는 말씀…인가요?”
품안에 들이밀어진 꽃다발을 얼결에 받아들고 고개를 두리번 거려보지만 몇 번을 둘러봐도 시야에는 눈앞의 남자와 자신밖에 없었다.
“미야옹-.”
“…?!”
남자가 중저음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고양이 소리를 내는 순간 나카지마는 쭈뼛 소름이 돋았다. 그러고 보니 지금 이 자리는 나카지마가 일주일전 고양이를, 리본을 만났던 그 자리였다. 마치 고양이가 사람이 된 것처럼 까만 정장과 하얀 셔츠와 장갑-까지 생각을 떠올린 나카지마의 시선이 황급히 남자의 목으로 향했다. 남자의 목에는, 나카지마가 리본에게 메어 주었던 것과 똑같은 보타이가 자리하고 있었다.
“설마….”
차마 먼저 손을 내밀지 못하는 나카지마를 대신해, 이번에는 리본이 먼저 허리를 숙여 나카지마와 눈높이를 맞추고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운명의 고양이라고 하지.”
리본은 다시 한 번 자신의 집사를 간택했다.
*운명의 고양이 : 가슴속에 로망의 고양이를 품고 살아가지만 실제 만나게 되는 고양이는 로망묘와는 전혀 동떨어진 고양이를 키우게 되는, 로망과 별개로 운명의 고양이는 따로 있다. 고양이에 전혀 관심 없던 사람이 냥줍하거나, 정말 키우고 싶어서 애쓰는데 뭔가 맞지 않아 키우지 못하다 엉뚱하게 만나게 되는 그런 경우 운명의 고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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