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바람이 시원하다 자두가 달아지는 계절이다 내가 사랑하는 여름.
폭풍이 몰아치고 장마가 쏟아지고 그늘이 소중해지는 볕을 맞이하는 여름.
먼 곳까지 선명히 아름다운 여름. 날의 꼬리가 길고 길어 유성우 같은 여름.
7월의 코 앞에서 맡는 별냄새.
여름 for 원
밤바람이 시원하다.
냉방을 하지 않으면 더운 집안과 달리 밖은 적당히 바람이 불어 선선한 날씨다. 숨을 한껏 들이마셨다 내쉬자 세찬 비에 씻긴 맑은 공기가 온 몸으로 퍼져나간다. 바람이 가져온 시원한 공기 속에는 초록의 풀내음이 잔뜩 묻어있고, 가까운 듯 멀리서 들리는 풀벌레 소리는 귀를 간질였다.
“역시 나오니까 좋다!”
뒤돌아보지 않아도 상대가 짓고 있을 표정이 눈에 훤했다. 어딘가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을 게 뻔했지만 알게 뭐람.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는 팔을 뒤로 뻗어 손만 내밀자 한숨을 내쉬면서도 내가 원하는 것을 손에 쥐어주었다. 반짝반짝 윤기가 흐르는 자두는 얼핏 보면 천도복숭아 마냥 커다랬다. 이미 깨끗하게 씻어왔지만 매끄러운 표면이 예뻐 괜히 옷자락에 자두를 두어 번 문질렀다. 좋아, 분명 더 반질반질 해졌어! 뿌듯한 마음으로 자두를 크게 한입 베어 물자 새콤달콤한 맛이 입안을 가득 메웠다.
“달아. 맛있어!”
크다 해도 자두는 자두. 몇 번 먹지도 않았는데 금세 씨앗이 드러났다. 왠지 아까운 기분이 들어서 자두 씨앗을 들고 고민하자 옆으로 불쑥, 휴지를 내밀어 온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란 말이지.
“이거, 심으면 자랄까?”
“…….”
“왜, 왜!”
눈으로 한숨이라도 쉬듯 엄청 한심해 하는 표정이 확연했다. 씨앗이니까 심으면 날 수도 있지! 울컥한 마음에 한 마디 덧붙여 보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처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도 안다. 과일의 씨앗을 심는다고 무조건 싹을 틔우는 게 아니라는 걸. 혹여 싹이 올라오더라도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는 걸. 그저 내가 바랐던 건―.
정원에 자두나무를 심었으면 좋겠다는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정원 한쪽에 자리한 나무는 제법 컸지만 가지가 앙상해 무슨 나무인지 분별이 가지 않았다. 그래도 꽃을 보는 데에는 무리가 없을 거라는 정원사의 말에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꽃샘추위도 물러가고 완연한 봄이 되자 투박했던 나뭇가지에 하얗고 부드러운 꽃송이가 가득 매달렸다. 관상용으로도 적합하다더니 이래서였구나. 나뭇가지를 가득 채운 작은 꽃송이들은 벚꽃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꽃송이만 가득했던 자리에는 곧 푸른 잎이 돋아나고 초록의 열매가 열렸다. 방울방울 맺힌 열매가 다시 노랗고 붉은 색으로 바뀌기까지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날 저녁 후식으로 자두가 올라왔다. 첫 수확한 것이라 크기도 작고 맛도 별로일 거라는 말을 들으며 제일 반지르르해 보이는 자두를 하나 집어 들었다. 와삭― 한 입 깨물자 새큼한 맛이 퍼져 나왔다.
“으으, 셔.”
내가 인상을 찌푸리는 것을 보며 미소 짓던 요리사는 남은 열매로는 잼과 파이를 만들 거라며 접시를 치웠다. 그럴 거면 처음부터 주지를 말지. 절로 불퉁해지는 표정을 숨기지 않으며 투덜거려 보지만 시큼한 맛은 쉬이 사라지지 않고 한참을 입안에서 맴돌았다.
먼 곳까지 선명하게 보이던 낮이 지나고 어둠이 내려앉았다. 모두가 잠들었을 고요한 시각, 창밖으로 정원에 켜진 은은한 조명을 잠시 바라보다 슬금슬금 방문을 나섰다.
정원에 내 키보다 커다란 나무는 의외로 몇 없는데 그 중 하나가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자두나무다. 고개를 들어 나무를 보자 드문드문 열린 자두가 눈에 들어왔다. 손을 뻗어 그나마 가까운 곳에 있는 자두 하나를 따 옷자락에 슥슥 문질러 닦았다. 낮에 먹었던 신맛이 떠오른 건 이미 손에 든 자두를 입 안에 넣은 뒤였다. 달지 않아. 여름인데도, 자두가 달지 않아.
새큼한 맛에 찔끔 눈물이 나오려는 기분이 들어 냉큼 눈을 위로 뜨고 한참을 깜박였다. 하지만 결국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리고, 흐려졌다 선명해진 시야로 길게 떨어지는 별똥별이 들어온다. 7월의 마지막 밤, 별님에게 빈 소원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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