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이바나시 :: 산 꿈 자유

토도 진파치 for 청연

 

너를 기다리는 시간, 토도 진파치 http://kaihuayul.tistory.com/1 에서 이어집니다.

 

 

방과 후 자전거 경기부의 부실을 찾은 하루노는 햇볕을 피해, 그리고 자신을 흘긋흘긋 쳐다보고 지나가는 부원들을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한쪽에 얌전히 서있었다. 덤덤한 듯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것과 달리 속으로는 이미 연습을 시작한 것 같은데 자신을 이곳으로 부른 독특한 선배는 언제쯤 나올지, 혹 그냥 해본 말이어서 자신이 정말 올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렇다면 얼마나 더 기다리다 자리를 떠나야 하는지 등을 계속 고민하는 중이었다.

 

안녕! 다시 소개할게. 난 토도 진파치, 네 이름은?”

, 저는 하루노 유카라고 합니다.”

하루 쨩이구나. 좋아, 그럼 이제 자전거 경기부를 둘러보러 가볼까!”

아뇨, 잠깐. 저기, 저는……!”

이 정도 기다렸으면 이제 움직여도 되지 않을까. 시간을 확인하는데 누군가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들자 토도가 활짝 웃으며 하루노에게 인사했다. 이름을 묻는 토도의 말에 습관적으로 답변을 한 하루노가 자전거 경기부 견학이 필요하지 않다는, 본래 의도했던 말을 미처 꺼내기도 전에 토도가 하루노의 애칭을 부르며 손을 잡아끌었다. 토도의 걸음에 맞춰 급하게 발을 움직이며 잡힌 손을 빼내려던 하루노는 무척이나 즐거워 보이는 토도의 얼굴을 확인하고 이내 몸에서 긴장을 풀었다. ‘이 선배 자전거 경기부를 정말 좋아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이런 하루노의 심경 변화를 모르는 토도는 만면에 밝은 미소를 가득 담고서 부실 여기저기를 소개해 주었다. 준비실부터 시작해서 휴게실 겸 회의실, 그리고 실내 연습장을 돌아 다시 밖으로 나온 토도가 손가락으로 학교 밖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기본 코스 중 하난데, 국도 1호선을 타고 모토하코네 방면으로 남하한 뒤, 아시노 호수를 따라 현도 75호선을 주행해. 그 뒤에 현도 138호선과 국도 1호선을 타고 오다와라 방면으로 내려간 후, 유모토오오바시를 돌아서 구 국도 1호선을 올라 학교로 돌아오는 코스로 주행 연습이 이루어져.”

주행 연습에 걸리는 시간은 어느 정도에요?”

“40km가 채 안 되는 거리라 오래 걸리는 코스는 아니야. 빠르면 두 시간 정도?”

토도의 설명을 들으며 머릿속으로 코스를 그리던 하루노가 어마어마한 연습량에 고개를 내둘렀다. 40km를 두 시간 이내에 돌아오면서 별 거 아니라는 듯 이야기하는 토도의 말에는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 나가고 싶은 것처럼 신이 나 보였다.

? 왜 그래?”

새삼 우리 학교가 로드 레이싱 명문이라는 걸 깨달아서요.”

와핫핫. 이제 이 몸이 위대해 보여?”

…….”

선배가 아니라 자전거 경기부가요.’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던 하루노가 난처한 듯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며 대답할 말을 찾았다.

너 말이야, 하코네 학원 최고의 실력과 미모를 가진 에이스 클라이머 토도가 지금 너를 안내해 준거라고!”

감사합니다……?”

자부심 넘치는 토도의 발언에 당황한 하루노가 얼결에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마저도 의문형이었지만.

혹시 산신이라든가, 슬리핑 뷰티라든가, 닌자……라든가 하는 말 들어본 적 없어?”

, 들어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지푸라기라도 잡듯 이어지는 토도의 부연 설명에 하루노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토도가 원하는 답변을 하려고 애썼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토도!”

뭔가 더 이야기하려는 토도를 중단시킨 건 부실 쪽에서 들려온 토도를 부르는 소리였다. 연습이 시작하고도 한참이 지난 시간이었으니 안에서 토도를 찾는 것도 당연했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 하루노도 거들었다.

안내해 주셔서 감사해요. 선배도 어서 연습 가보셔야죠! 에이스 클라이머시라면서요……!”

클라이머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에이스라니까 중요한 거겠지, 라고 짐작한 하루노가 토도를 만난 뒤 가장 환한 얼굴로 인사했다. 그 얼굴에 울컥한 토도가 하루노의 손에 들려있던 휴대폰을 빼앗았다.

!”

내 번호랑 메일 입력해뒀으니까 연락해.”

그게, 저기…….”

아니다. 너 몇 학년 몇 반이야?”

말을 늘이는 하루노의 반응에서 자신이 원하는 걸 얻지 못할 거라는 것을 깨달은 토도가 재빨리 질문을 변경했다. 그리고 하루노는 바뀐 질문에 요령 있게, 혹은 거짓으로 대답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결국 하루노의 입에서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은 토도가 몸을 돌려 부실로 향하며 한 마디 덧붙였다.

그럼, 연락해.”

만족스러운 얼굴로 사라지는 토도를 보며 하루노가 울상을 지었다.

 

 

안녕하세요. 하루노 유카라고 합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토도에게 메일을 보내기 위해 휴대폰을 손에 든 하루노는 내용을 뭐라고 적어야 할지 몰라 한참을 고민했다. 하루노가 계속 휴대폰을 손에 들고 만지작거리기만 하자 옆에 있던 친구가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하루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뭐해?”

, 아사미 쨩. 클라이머가 뭐야?”

우왓. 하루노 쨩, 드디어 로드 레이스에 관심이 생긴 거야?”

아하하.”

아사미는 어색한 웃음을 짓는 하루노는 아랑곳 하지 않고 하루노에게 로드 레이스에 관한 모든 것을 전수할 기세로 이것저것 설명을 시작했다.

클라이머는 특히 산악, 그러니까 오르막에 강한 사람을 말해. 산 정상에 가장 먼저 도달하는 사람에게 산악상이 주어지는데…….”

혼이 나간 표정으로 아사미의 설명을 듣던 하루노의 귀에 남은 것은 한 가지였다. ‘천재 클라이머 토도 진파치’. 자전거를 좋아하는 조금 유별난 선배라고 인식했던 사람이,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대단하고 유명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토도가 스스로를 표현했던 것에서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지금이라도 몰라봐서 죄송하다고 사과해야 하려나.’

하루노의 의식이 엉뚱한 곳으로 흐르려는 것을 차단한 것은 장황한 설명을 마친 아사미의 질문이었다.

그래서 하루노 쨩. 하루노 쨩의 흥미를 일으킨 사람이 토도 선배야, 마나미야? 토도 선배야 워낙 유명하니 몰랐을 리 없고, 역시 마나미?!”

미안합니다. 몰랐습니다.’

아사미의 반응으로 보아 어쩐지 절대 말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말을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아둔 채 하루노가 애써 말을 돌렸다. 이번만 넘어가준다는 듯, 아사미가 눈을 흘겼지만 하루노의 머릿속을 맴도는 것은 이제 어떡하지.’라는 생각뿐이었다.

 

 

혹시 토끼 좋아해?”

토끼요……?”

. 애완용 토끼는 아니지만.”

가까이서 제대로 본적은 없지만 좋아해요.”

몇 번의 메일을 주고받은 토도와 하루노는 두 사람이 처음 조우했던 뒤뜰에서 다시 만났다. 토도의 안내에 따라 뒤뜰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자 작은 케이지 하나가 보였다. 케이지 안의 토끼를 발견한 하루노가 케이지 앞에 바짝 다가가 쪼그려 앉았다.

이름은 토돌이야. 우리 부의 신카이가 데려와서 키우고 있어.”

초롱초롱, 한참을 토돌이와 아이컨텍을 하며 눈을 반짝이던 하루노가 상기된 표정으로 토도에게 물었다.

만져 봐도 돼요?”

, 괜찮아. 꽤 순하거든.”

안녕, 토돌아?”

토도의 입에서 허락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하루노가 토돌이에게 손을 내밀어 조심스레 머리를 쓰다듬었다. 낯선 인물의 등장에 연신 귀를 쫑긋거리던 토돌이는 다행히 하루노의 손길에도 얌전했다.

와아, 너 진짜 귀엽구나.”

동물 좋아해?”

!”

가뜩이나 인적이 드문 뒤뜰에서도 한쪽 구석에 위치한 케이지는 토돌이의 존재를 아는 일부 자전거 경기부 부원들이 아니면 찾지 않는 곳이었다. 혹시나 싶어 데려오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더 좋아하는 하루노의 모습을 보니 토도는 기꺼우면서도 조금 어이가 없어졌다. 자신이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보고도 저런 반응을 보여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 토도 선배 멋있어요!’

잠깐 머릿속으로 팬클럽 여아들처럼 자신을 보고 비명을 지르는 하루노를 생각하던 토도는 금세 고개를 저었다. 연예인을 보고 꺅꺅거리는 건 하루노와는 왠지 어울리지 않았다.

종종 와서 보고 가도 돼. 음식을 주는 건 안 되지만.”

정말요? , 토돌이를 데려오셨다는 선배한테 허락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토도의 제안에 반색하던 하루노가 이내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물었다.

내가 얘기해둘게.”

감사합니다!”

절대 이야기할 생각은 없었지만 토도는 우선 그렇게 대답했다. 자신의 대답에 안도하는 하루노의 반응에 흐뭇해하면서.

아참. 토도 선배, 이거.”

? 이게 뭐야?”

드림캐쳐에요. 가지고 있으면 좋은 꿈을 꾸게 해 준다고 해서 얼마 전에 친구들하고 함께 만들었거든요.”

직접 만든 거야?”

. 그래서 파는 것처럼 정교하거나 예쁘지는 않아요.”

아냐, 아냐! 완전 예뻐! 고마워!!”

뜻밖의 선물에 토도는 한껏 기뻐했다. 자신의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선물에 담긴 의미가 어쩐지 간질간질한 느낌이어서, 선물을 건네고 쑥스러워하는 하루노를 답삭 껴안고 싶다는 충동이 들 정도였다.

ありのままの姿見せるのよ ありのままの自分になるの 自由よ これで今少しもくないわ―♪

토도의 충동을 방해(?)한 건, 그리고 하루노를 위기(!)에서 구한 건 하루노의 휴대폰 벨소리였다. 지난겨울을 휩쓸었던 영화 겨울왕국의 삽입곡으로, 익숙한 멜로디가 두 사람 사이를 울렸다.

으앗, 죄송합니다!”

푸하핫.”

당황한 하루노가 허둥지둥 휴대폰을 꺼내 벨소리를 진동모드로 바꾸었고, 토도는 방금 전 자신을 사로잡았던 감각이 우스우면서도 유쾌한 느낌이 들어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영문을 모르는 하루노가 진동이 울리는 휴대폰을 손에 들고 큰소리로 마구 웃는 토도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며 토돌이가 귀를 쫑긋거리고 있었다.

 

 

 

Posted by De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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